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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소식

보도자료

“나라가 어려운데 군에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도병 참전 ‘故 주영진 일병’ 신원확인
□ 4월 15일 화요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다가 18세의 나이로 산화한 호국영웅을 가족의 품으로 모셨습니다. ‘故 주영진 일병’이 그 주인공입니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단장 이근원)은 2000년 10월에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7사단 소속 故 주영진 일병으로 확인했습니다.
◦이로써 그동안 발굴된 11,400여 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 중 신원을 확인해 가족의 품으로 모신 분은 총 251명이 됐습니다.

□ 고인의 신원확인에는 전국에서 유가족을 마주하는 국유단 탐문팀의 구슬땀과 오래전 발굴된 유해를 새로운 유전자분석기법으로 재분석해 한 분이라도 더 가족의 품으로 모시고자 한 유전자분석관들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故 주영진의 신원확인은 직접 발로 뛰는 국유단 탐문팀과 유전자분석관의 노력이 이룬 결과입니다. 유가족 탐문팀은 지역별 전사(戰史) 연구를 기초로 병적부, 전사자명부를 분석하여 전사자의 본적지를 확인 후 행정관서의 협조를 통해 유가족의 소재를 추적하였으며, 고인의 유가족 유전자 시료도 탐문관이 직접 방문해 2022년에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유전자분석관들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유단은 2021년 3월부터 발굴된 지 오래된 유해를 대상으로 유전자 재분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故 주영진 일병님의 유해도 과거의 기술로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유전자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정밀하게 유전자 재분석을 실시한 결과 최종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고인은 1950년 8월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으며, 이후 국군 제7사단에 소속돼 참전한 지 6일 만에 ‘기계-안강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고인은 1928년 2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5남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부친을 따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자랐으며, 전북공립중학교(6년제, 1951년 전주북중학교와 전주고등학교로 분리)에 진학할 정도로 학업에 열중해 집안에서도 거는 기대가 컸다고 합니다. 또 의협심이 강하고 리더십이 있어 교련 연대장*을 할 정도였습니다.
* 당시 중ㆍ고등학교는 일종의 연대 기능을 했던 조직체에 속해 있었고, 그 학교의 총 조직을 운영하는 학생장을 보통 연대장이라고 불렀습니다. 보통학교의 학생회 회장이 연대장 임무를 같이 맡았습니다.

◦고인은 고등학교 재학 중 6·25전쟁이 발발해 북한군이 남하한다는 소식을 듣자 친구들과 함께 전라북도 남원시까지 걸어가 학도병으로 입대했습니다. 유가족에 따르면, 당시 고인의 부친은 “아직 나이가 어리니 군대에 안 가도 된다.”라고 만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인은 “전쟁이 안 났으면 모르는데 전쟁이 나서 나라가 어렵기에 빨리 가야 한다.”라며 집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후 고인은 1950년 8월 대구 제1훈련소에 학도병으로 합류했습니다.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을 시간도 없이 전선에 투입됐으며, 안타깝게도 국군 제7사단에 소속으로 ‘기계-안강 전투(1950. 8. 9. ∼ 9. 14.)’에서 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참전한 지 겨우 6일 만이였습니다.
◦기계-안강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던 시기에 국군 수도사단이 7사단 3연대를 배속받아 경상북도 포항시 기계면과 경주시 안강읍 일원에서 북한군 12사단의 남진을 저지한 방어전투 입니다.

□ 이번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4월 15일 화요일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습니다.

◦고인의 형제는 모두 고인이 되었고, 친조카인 주명식 씨(76세)가 선산에 10대 조상의 묘를 관리하는 등 집안의 대소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주 씨는 삼촌인 고인의 영향을 받아 학군사관(9기, 1971년 임관) 장교로 임관해 병역의 의무를 마치기도 했습니다.

◦유가족 대표인 주명식 씨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삼촌을 잊지 않았다고 하면서 “유해를 발굴해주시고 삼촌을 영면하게 해주신 국방부 관계자분들께 큰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호국의 성지 대전현충원에 삼촌을 모시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삼촌의 유해를 찾은 큰 기쁨을 친족들과 나누겠습니다. 드디어 조상님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번 행사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위치한 고인의 친조카인 주명식 씨 자택에서 열렸습니다.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을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 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 6·25전사자(호국영웅)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동참이 절실합니다.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 가능합니다. 제공하신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이 지급됩니다.

◦6·25전쟁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유가족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한 ‘시간과의 싸움’ 중인 상황인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절실합니다.

◦국유단 탐문관들은 각지에 계신 유가족을 먼저 찾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고 계시지만 거동 불편하거나 생계 등으로 방문이 어려우신 유가족께서는 대표번호 1577-5625(오! 6·25)로 언제든 연락 주시면 직접 찾아뵙고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드립니다. 당신(YOU)도 ‘유(遺)가족’일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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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전화 :
1577-9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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