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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문화재지킴이 Work Shop 후 서울성곽 답사! 1, 2, 3, 4.
● 2011 문화재지킴이 Work Shop 후 서울성곽 답사! 1, 2, 3, 4.

1. 개 요 : ⑴ ~ ⑽.

⑴. 일 자 : 2011年 12月 07日.
⑵. 장 소 : 서울 성곽(18.6km).
⑶. 주 최 : 문화재청.
⑷. 주 관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⑸. 목 적 : 서울성곽 답사.
⑹. 인 원 : 45名.
⑺. 날 씨 : 흐린 겨울날.
⑻. 사 진 : 첨부 하였습니다.
⑼. 작 성 : 문화재 지킴이 龍湖 宋 哲 孝.
⑽. 개 괄 : ⑴ ⑵.

⑴. 서울성곽은 조선 태조 5년(1396)에 축성하여 1963年 01月 21日 사적 第 10號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467,922.6㎡이고 둘레는 약 18.6km의 석조성곽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상동 산 1-3으로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천도 후 일차적으로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다음 태조 4년(1395) 09월에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정도전(鄭道傳)에게 명하여 성터를 살피게 하였습니다. 정도전은 백악(白岳) · 인왕(仁王) · 목멱(木覓) · 낙산(駱山)에 올라 실측하여 4산을 연결하는 5만 9,500척의 성터를 결정하여 다음해 정월부터 무려 11만 8,000여명이 동원되어 600척을 한 단위씩 축성구역을 97지구로 나누어 구역마다 천자문의 글자를 표시하여 백악 동쪽에서부터 천(天)자로 시작하여 낙산 · 남산 · 인왕산을 거쳐 백악 서쪽에 이르러 조(弔)자까지 구획하여 공사를 하였고 공사구역마다 책임자를 선정하여 책임진 부분에 해당하는 성곽 벽에 관직과 축성한 고을의 이름을 새겨 책임을 분명하게 하도록 하였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험준한 산에는 15척 높이의 돌로 쌓게 하였는데 돌로 쌓은 성벽의 길이는 1만 9,200척이었고 평지는 너비가 아래 부분 25척 윗부분 18척 높이 25척의 규모로 흙을 쌓았는데 성벽의 길이는 4만 3,000척이었습니다.

⑵. 동대문 부근 청계천에 있는 수구(水口)에는 구름다리를 쌓고 그 좌우에는 돌로 성을 축조하였습니다. 홍예의 높이는 16척 석성 등을 포함한 길이는 1,050척이었고 그해 가을에 8만 명의 정부(丁夫)를 동원 흙으로 쌓은 부분을 돌로 고치고 4대문과 4소문을 완성하였습니다. 4대문이란 동쪽의 흥인문(興仁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 남쪽의 숭례문(崇禮門) 북쪽의 숙청문(肅淸門)을 말하고 4소문이란 동북의 홍화문(弘化門) 동남의 광희문(光熙門)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서남의 소덕문(昭德門)을 가리키며 이 가운데 흥인문에만 옹성(甕城)을 쌓았으며 숭례문은 1396년에 쌓았고 흥인지문의 옹성은 이듬해 04월 완성하여 世宗 4년(1422) 이 성을 대대적으로 중축하면서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바꾸며 더 높게 쌓고 석재를 약 2 : 1 길이 비율의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았으며 여장(女墻)도 쌓았고 수문도 2개 더 만들었습니다. 전국에서 약 32만 2,000명의 인부가 동원된 이때의 개축으로 도성은 둘레 8만 9,610척 높이 40척 2촌 여장 4,664첩(堞) 치성(雉城) 6군데로 되었으며 곡성(曲城) 1군데 성랑(城廊) 15군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후 1426년 수성금화도감(修城禁火都監)을 두고 관리를 전담케 하였습니다. 오늘의 탐방코스는 장충체육관→성곽 길→한국 자유총연맹→국립 중앙극장(해오름 극장)→소나무 탐방로→남측 포토아일랜드→N서울타워→봉수대→잠두 봉 포토아일랜드→안중근의사 기념관→숭례문으로 답사를 하였습니다.

2. 내 용 : ⑴, ⑵, ⑶.

⑴. 성곽을 걷기 전에 잠깐 사대문과 사소문에 대해 알아보면 대문과 소문은 안팎으로 큰 길이 이어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문으로 지금도 역시 분명히 존재하는 도성의 경계를 드나들며 남쪽에 있는 숭례문은 한양으로 통하는 관문으로 현대의 지도로 살펴보면 돈의문(서대문)과 함께 도성 바깥에서 입궐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이런 대문과 소문 외에도 이름 없는 작은 문인 암문(暗門)은 숭례문에서 시계반대 방향으로 향하면 광희문과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 사이의 남소문이며 궐에서 시체가 나가던 문이라고 시구문 또는 수구문이라고 하며 흥인지문(동대문)은 한양에서 가장 낮은 지대로 도성안의 물이 청계천을 통해 이곳으로 흘러 나갔다는 오간수교 그리고 2008년 공사 중 발견된 이간수교가 이를 증명합니다. 낙산을 따라 혜화문(동소문)에 홍화문이라고도 했습니다. 백악산에 자리한 숙정문 외에 현존하는 성문들은 모두 큰길가를 두고 끊겨있으며 여기다 왜 성문을 만들었는지 숙정문을 지나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성곽 길은 돈의문 터를 통과해 숭례문으로 돌아옵니다. 지하철 1, 4호선 서울역 4번 출구로 나오며 지난 2008년 방화로 불타버린 숭례문은 공사가 한창이고 빌딩 숲에서도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지키던 숭례문이 도성 여러 문들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정문이어서 크고 화려한 외형 때문도 아니며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길의 출발점이자 서쪽 한강변 포구로 이어지는 요지이기 때문만도 아니고 그저 1398년(태조 7) 처음 지어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또 일제가 좌우 도성을 헐어버린 후에도 거리 한복판에 홀로 꿋꿋이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숭례문을 오른쪽에 두고 남대문시장 1번 게이트를 지나 직진하여 8번 게이트를 지나 고가로 진입하면 SK빌딩 앞에 성곽이 반갑습니다. 경쟁하듯 솟은 빌딩숲에서 만났기 때문에 반갑고 남산공원을 알리는 삼거리에 남산공원 백범광장이 공사 중으로 남산공원으로 올라가도 좋고 왼쪽 큰길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남산공원 초입으로 들어서면 안내판을 따라 김유신장군 동상을 지나 좀 전 남산공원 초입 삼거리에서 시작된 큰길로 내려서면 납작한 원형 돔처럼 생긴 지붕 모형의 건물은 서울특별시 교육연구위원회건물이며 이 삼거리 건너편에 N서울타워가 보이는 가파른 계단이 있고 삼순이 계단으로 유명합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오른쪽으로 정면에 중부 푸른 도시 사업소가 있습니다.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삼순이 계단과 N서울타워로 이어지는 길이 만나며 흙길을 따라 가면 제법 여유 있는 이 공간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정신까지 식민화하려던 조선신궁이 있던 곳으로 목멱산이라고도 불리는 남산은 목멱대왕을 모시던 국사당이 있었습니다. 조선을 지키던 신을 모신 국사당은 인왕산으로 보내고 남산에는 자신들의 신을 모셨으나 지금은 백범 광장 안중근의사 기념관 등이 있습니다.

⑵.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는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을 버리고 1394년 10월 28일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했습니다. 도읍의 본격적인 건설 사업은 그해 12월 정도전(鄭道傳)에게 도시 건설을 착공하게 함으로서 시작되었으며 경복궁을 선두로 종묘와 사직을 완공하는 등 궁성의 모습이 갖춰지고 1396년 전국 각지에서 12만 명을 뽑아 도성의 성곽을 시작 98일 만에 완공하였습니다. 성곽의 길이는 18.6km로 각 구역마다 책임자를 정해 그들의 이름을 성벽에 새겨 넣었고 성곽은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 4곳의 산을 연결해서 축조 하였는데 이는 도시의 방어를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도성의 전체적인 완공은 30년 정도 걸렸지만 성곽은 석 달 만에 급조된 것이라 허술한 부분이 많아 세종대에 이르러 석성으로 개축되었지만 처음 완공 당시는 토성과 석성이 혼합된 성곽이었으며 서울 도성은 수도를 방어하는 성이자 왕의 궁궐을 보위하고 있어 가장 내부인 궁성인 경복궁, 그 바깥에 도성인 서울 성곽, 가장 외곽에 산성이 쌓여진 삼중구조로 서울 성곽은 적의 공격에 대비한 성이기 보다는 궁궐을 보위하고 수도를 상징하는 성 이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치룬 왕조는 침략에 대비해 유사시 적과 대응하기 위한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이 축조되었습니다. 서울성곽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도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부분을 훼손하였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성곽은 1970년대에 복원한 것으로 동대문과 낙산, 성북동으로 이어져 북악산을 지나 인왕산, 세검정을 거쳐 북한산성에 이르는 성곽을 볼 수 있으며 현존하는 성곽은 숙종, 영. 정조 때 중축된 것으로 4대문과 4소문이 있고 과거 한양을 둘러쌌던 성곽의 길이는 약 18.6km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의 수도로 한양을 택하면서 1396년(태조 5) 한양을 둘러싼 남산→낙산→백악산→인왕산으로 이어지는 도성을 쌓고 4개의 대문을 내고 그 사이 사이에는 4소문을 두어 한양은 내사산인 남산→낙산→백악산→인왕산으로 한번 외사산인 관악산→용마산→북한산→덕양산으로 한번 더 보호됩니다.

⑶. 계단길이 성곽을 따라 N서울타워로 이어져 가파르고 계단도 많으며 서울을 감싼 인왕산과 낙산 그리고 서울이 펼쳐진 남산 골 딸깍 발이 선조들이 생각납니다. 벼슬하지 못한 가난한 선비들이 나막신을 딸깍거리며 돌아다니던 모습을 딸깍발이라고 했으며 장안의 권문세도가들은 북촌에 살고 가난한 선비들은 남촌에 터를 잡았습니다. 잠두봉에서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케이블카 정류장을 지나 봉수대에 도달하며 남산에만 5곳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봉수대는 조선시대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었습니다. 봉수란 횃불이나 연기를 사용해 이 산봉우리에서 저 산봉우리로 릴레이식으로 신호를 보내는 제도로 국가의 비상사태를 한성까지 알리는 통신이었던 시설로 현재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12시30분까지 관광객을 위해 봉수의식이 열립니다. 봉수대를 지나면 바로 N서울타워로 팔각정 앞에 국사당 터 표지석은 태조 이성계가 한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남산(목멱산)을 목멱대왕으로 봉작해 수호신으로 모시며 제사를 지낸 사당입니다. N서울타워는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이자 전망대이자 관광지로 관광객들은 물론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지만 N서울타워의 본분은 통신 탑입니다. 큰 길을 따라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성곽이 이어지며 N서울타워에서 남산 도서관→한국의 집→국립 중앙극장을 지나 원점으로 회귀하는 2번 버스와 이태원 방향으로 나가는 3번 버스 등이 있습니다. 여유가 된다면 2번 버스를 타고 남산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으며 30분 정도 소요되며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들이 진입하는 방향으로 내려서 일방통행이라 올라오는 버스를 마주보고 넉넉한 길로 걸을 수 있으며 N서울타워를 배경으로 서울성곽이 펼쳐진 이 구간이 가장 오래된 서울성곽으로 태조 때 쌓아올린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조선 초 축성기술을 알 수 있습니다. 국립 중앙극장을 뒤에 두고 길을 건너 한국 자유총연맹으로 들어서 부터 장충체육관까지는 사유지라서 정해진 시간외에는 성곽 바깥으로 걸어야 하며 성곽의 안팎을 구경하는 재미는 물론 호젓하니 걷기 좋은 길입니다. 신라호텔을 지나 장충체육관이 왼편에 모습을 드러내자 성곽이 뚝 끊기고 도로가 나타납니다. 서울성곽의 첫 번째 구간 남산(262m)은 가장 오래된 서울성곽을 만날 수 있는 성곽이며 한강 이남에서 한양으로 입성하기 위해 숭례문을 거쳐야 했고 사람들이 출입하는 숭례문 근처에는 난전이 펼쳐졌으며 이는 오늘날 남대문 시장의 효시이며 낙산 코스에서 소개하는 흥인지문(동대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008년 방화로 불타버린 남대문은 공사가 한창입니다. 남산 줄기를 따라 성곽이 이어지며 케이블카 종점을 지나면 바로 봉수대로 관광객들은 봉수군들과 그들의 대장인 오원(오장)과 사진 찍기에 분주합니다.

3. 결 론.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 14호로 지정된 봉수대는 횃불이나 연기를 사용하여 국경지대 및 국내 각 지방의 비상사태를 왕궁이 있는 서울까지 빠른 속도로 알릴 수 있는 경보망인데 남산 봉수대는 전국의 봉수가 최종적으로 집결되는 중앙 봉수대라고 하며 태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 500여 년간 있었으며 그 후 소실로 1993년 현 위치에 복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성곽 전체를 원래의 상태로 복원 하려면 국민들의 관심과 이해 그리고 협조와 복원을 위한 공감대가 이루어져야합니다. 남산 미군 통신대에서 낙산마루까지의 바깥쪽 옹벽과 과학고교에서 와룡공원 바깥쪽 구간에는 탐방로를 만들고 흥인지문은 옹성과 아래층 문루까지 광희문과 혜화문은 개방을 해야 하고 서울성곽의 구간과 구간 사이에 이정표를 세워 국민 모두가 서울성곽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서울성곽은 국가 지정문화재로 막대한 복원비용이 소요되므로 중앙정부와 문화재청이 상호 협력하여 추진해야 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대한민국 독립기념관 해설사로서 서울성곽을 2회에 걸쳐 북악산 성곽과 남산 성곽을 답사한 후에 그 중요성을 심도 있게 알게 되었습니다.

4. 감사 합니다! 2011年 12月 09日 문화재 지킴이 용 호 송 철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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