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Navigation

민원ㆍ국민참여

고마워요, 우리 국군

고마워요우리국군

대청함 함장 강영훈대령님 감사합니다.
천안함 사건으로 놀랐던 가슴이 진정되어 갈때쯤 또 이번엔 연평도포격 사건이 벌어져서 불안한 맘으로 아이들과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근무를 배를 타고 바다에서 생활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늘 항상 맘이 짠하곤 합니다.
배라는 곳이 일반인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하고 힘든 생활 공간이더라구요.
한두달에 한번 보는 남편 한두달에 한번 만나는 아빠 ... 저희 아이들은 가끔 보는 아빠지만 아빠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잘 따른답니다.
그래서 일까요? 바다로 배가 나가면 전화도 안 되거든요. 아빠를 유난히 찿고 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디서 일하는지 알려주기위해 배 공개행사에 갔었습니다.
신랑이 자는 곳 근무하는곳.. *(5살난 딸아이와 2살된 아들을 대리고 먼길을 다녀왔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지금 이글을 쓰는 순간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는거 같습니다.
좁디좁은 침상. 너무도 더운 근무지. 가끔 만나는 신랑 귀가 항상 짓물러 있었습니다.
피부가 왜 그러냐고 .. 타박아닌 타박을 했었던 내 자신이 너무 미워 지더라구요.
더운 열기에 헤드셋을 끼고 일하니까 그런거더라구요.
근무하는 곳의 온도는 40도 정도 되더군요.
배가 움직이면 70도 이상 올라간다고 들은거 같습니다.
것도 그때 첨 알았어요.
집에선 그런 얘기 전혀 안하거든요.
그렇케 힘들게 일하는지 그때 첨 알았습니다.
아들은 아직 어리지만. 5살난 딸아이는 우리 아빠는 나라지키는 훌륭한 군인이야 라고 얘기 합니다.
둘째 아이를 낳고 많이 안 좋아진 몸 때문에 병원이 여러번 이유없이 실려가기도 했었습니다.
약도 수없이 먹었구요.
둘째 녀석 놓고 내손으로 아이들을 거두지 못하는 세월도 보내야 했습니다.
병원에 실려가서 호흡 곤란이 와서 큰 병원에 실려 가면서도 곁에는 남편이 없었습니다.
연락조차 힘들었다더군요. 당장 달려올수도 없었지요.
( 그때는 대청함을 타기 전이없습니다.)
그때 역시 배를 타고 있었구요. 나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 모두 힘이 듭니다.
민간인들이 어떤 시선을 보내든 그건 그들의 눈이 겠지만..
가족의 곁을 지킬수 없고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더 많습니다.
....
그러기에 군인 가족들은.. 늘 지치고 힘이 듭니다.
남편이 힘든순간 곁에 있어주지 못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빠의 빈 자리를 느껴야 하고 ..
또.. 한여자의 남편으로 내 아이들의 아빠로 해야할 일들을 하지 못하며 살아가는게 우리네 군인 가장들 입니다.

아직도 전 몸이 그리 좋치 않은 편입니다.
그래서 친정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남편을 따라 가고 싶지만. 내가 갑자기 쓰러지면... 아이들과 저를 돌볼 사람이 진해엔 없기에 따라가질 못하고 여기 강릉에 살고 있습니다.

동해에서 아이 둘을 출산했습니다.
신랑이 늘 배를 타고 2주일씩 혹은 그보다 더 짧게 더 길게도 나갑니다.
출산이 다가오면서 신랑없이 곁에 아무도 없이 갑자기 진통이 오까. 계속되는 하혈때문에 혹 잘못 되지는 앖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에 떨어야 했던.. 세월덕에 불안증이 만성이 되어 불안증에 우울증도 생겨서 친구처럼 따라 다닙니다.

이런 맘을 아무도 헤아려 주거나 혹은 걱정하지 말라고 어루 만져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신랑이 교육을 가고 6개월여를 떨어져서 지내다 다시 동해로 올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진해로 발령이 났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았습니다.
따로 두집 살림하는것도 처음 이거니와... 한달씩 출동가는것도 처음이었거든요.
거기다 북한의 도발로 .. 참 맘이 힘이 들었습니다.
천안함때는 가슴을 쓸었습니다.
내 신랑이 만약에 ... 생각하기도 끔찍했습니다.
....
등기로 우편물이 배달되어 왔습니다.
함장님께서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담긴 우편물이더군요.
사람들은 뭐 그깟 편지 한통이 위안이 될까 하겠지만..
아니요. 그렇치 않습니다.
신랑과 2005년도에 결혼해서 지금껏 이렇케 우편물을 받아 본게 처음 이었습니다.
신랑이 대청함을 탄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세번째 우편물 입니다.
천안함 때도 이번 연평도 사건.. 또 그 중간에도..
걱정 하지 말라는 짧은 글이었지만.. 또 편지로 걱정이 싹 가시지는 않치만..
그래도 힘든 생활하는 내 남편 내아이들의 아빠를 잘 챙겨 주시고 계시는 구나 하는 믿음은 생깁니다.
부하 직원의 가족까지 살피는 분이시라면.. 그래도 전쟁이 나지 않는한.. 늘 밖에서 생활하는 우리 신랑 걱정은 조금은 덜어도 되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늘 감사한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신랑이 속썩이면 연락하라고 주신 번호로 연락드리기도 뭐하고 ~~
연평도 사건으로 심난한 마음 달래서 인터넷 검색하다가 이런곳을 발견하여 맘을 전합니다.
뭐 보시지 못 하실꺼 같은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가슴에 담아두었던 감사의 맘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늘 신경써 주셔셔 감사합니다.
여태껏 가족을 이렇게 신경써 주신분을 만나지 못했거든요.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이말이 맞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가정이 평안해야 모든일이 잘 되는거 같습니다.
가정에서 화를 내면 밖에 나가서도 화를 내기 쉽다고 합니다.
남편이 맡은일에 충실할수 있도록 그 가족을 살필줄 아시는 함장님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런 함장님 밑에서 일 하는 신랑이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바쁜 업무 속에서 당신 가족챙기실 시간도 부족 하실텐데 이렇케 신경써 주시는거 쉬운일이 아니실텐데 말입니다.

곧 발령이 나실꺼란 얘길 얼핏 신랑에게 들은거 같습니다.
신랑이 그배 타는 동안 계속 계셨으면 좋겠다고 신랑에게 말했었는데요.
언제 가실지 모르겠지만. 다른곳에 가셔도 제 기억속에 함장님이 남아 계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우리 국군 페이지 만족도 평가
담당부서 :
정책홍보담당관
전화번호 :
02-748-5525
대표전화 :
1577-9090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셨습니까?

의견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