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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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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경과 및 평가
1. 핵 개발 경과 및 평가
| 핵 기반시설 구축 | 북한은 6·25전쟁이 끝난 직후 전후 복구와 동시에 원자력에 관한 기초연구, 인력
양성 등 핵에너지 활용을 위한 기반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1955년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에 핵
물리강좌를 개설하였고 1956년에는 국가과학원(구 과학원)에 핵물리실험실을 설치하였다. 특히 1956년
「북·소 원자력협력협정」을 체결하면서 구소련 드브나(Dubna) 핵연구소에 과학자들을 파견하여 선진기술
확보 및 전문인력 양성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1959년에는 중국과도 원자력협력협정을 체결하였다.
1963년 구소련의 도움을 받아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하였고, 이를 토대로 1965년부터 평북 영변에 대규
모 핵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동시에 평산, 순천, 박천 등의 우라늄 광산 개발과 채광된 우라늄
을 정련하기 위한 시설 등도 건설하였다. 이처럼 북한은 풍부한 우라늄 자원을 바탕으로 핵시설들을 차례
대로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 핵 개발 본격화 | 북한은 1980년대 들어 무기급 핵물질 생산시설
구비, 우수한 핵 전문인력 양성, 핵실험장 건설 등 핵무기 개발을 위
한 기반시설을 확장하면서 본격적인 핵 개발에 착수하였다. 영변에 조
성된 핵단지에 플루토늄 생산에 필요한 핵심시설인 원자로, 재처리시
설, 핵연료제조공장 등이 차례대로 완공되었다. 북한은 자체 기술력으
로 개발한 5MWe 흑연감속용 원자로를 1986년 완공하여 가동하였으
며,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방사화학실험실을 1985년에
착공, 1989년부터 가동하였다. 이와 동시에 영변 단지 내 50MWe
흑연감속용 원자로가 1995년 완공을 목표로 착공되었고, 태천에는
200MWe 흑연감속용 원자로 건설 계획을 수립하였다.
1989년 프랑스 상업 위성에 의해 영변 핵단지가 노출되면서 북한 영변에 위치한 5MWe 원자로
의 비밀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후 국제사회의 압력에 의해
1991년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 간 안전조치협정이 체결되었고, 이에 따라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의 핵
사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결과 북한의 핵활동 신고 내역에 중대한 불일치가 발
견되면서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은 더욱 논란이 되었다. 추가 확인을 요구하는 국제원자력기구의 특별사찰
요청은 북한의 「핵비확산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이어졌고 클린턴 행정부는 군사 옵션까지 검토하였으
나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기본합의」 타결로 북핵문제가 극적으로 봉합 됨으로써 북한의 핵활동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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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 2002년까지 한동안 동결되었다.
1)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 간 3차례 고위급회담을 통해 합의문을 채택 (1994.10.21.)
2) 북한의 핵개발 동결·포기를 대가로 미국은 중유 제공, 경수로 2기 건설, 북미 관계 정상화 등에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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