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Navigation

민원ㆍ국민참여

고마워요, 우리 국군

고마워요우리국군

2010년 1회 검정고시합격수기(6군단 16화학대대1중대)
소속:1중대
계급 :상병
성명 : 이경태

D-7일의 불안, 초조, 긴장감을 말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수능 같은 큰 시험을 치러본 평범한(?) 20대라면 누구든지 그 마음에 대해 짐작이 갈 것이다. 부대원 모두가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성실하게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 세명은 때 늦은 공부 열병에 걸려 냉기 서린 도서관에서 전의를 불태웠던 것이다. 정말 합격할 수 있을까? 인생도 마찬가지겠지만 더구나 국가시험에서 인정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 받고 중대원들과 간부님들의 주목을 받아가며 느꼈던 압박감에서 솟아날 구멍은 합격 밖에 없었다. 흠, 이러면 될 것도 안 되겠다 싶어 다시 한 번 정신을 다 잡아야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던 그대로 침착하게 최선을 다하고 마무리를 잘 짓는 것, 그것이 시험을 잘 보는 유일한 길이 아니던가. 혹자는 그깟 고등학교 졸업시험이 뭐가 대수라고 호들갑 떨지 마라 하겠지만, 대학까지 졸업한 나에게 있어서도 이번 시험은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자대로 배치돼 군복무를 하며 생활관 막내로 어언 4개월이 지나 드디어 이를 갈며 기다리던 후임이 들어왔다. 같은 제독병이 아닌 운전병이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 처음 맞이하는 후임이라 그런지 좋은 군대생활을 물려주고 싶은 애정이 먼저 생겼다. 그런데 대화를 쭉 하다 보니 평범하지 않은 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다니다 중퇴. 나이는 24살.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좀 놀다 왔는지, 실컷 놀다 왔는지 모르겠지만 사연이 있을 수도 있고, 군대생활 부적응에 대한 걱정까지 주제넘게 해봤다. 어쨌거나 공부하고는 거리를 많이 두고 있는 후임이겠거니 하고 지냈는데, 자격증시험 응시자 조사 과정에서 검정고시를 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지금 상근으로 근무 중인 사촌 동생 생각이 났다. 정말 집안에서 볼 때는 순진한 동생이었는데 중, 고등학교를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실업계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도중하차 하는 안타까운 처지가 된 것이다. 마음을 좀 잡아주려고 내가 몇 번 만나 얘기도 해봤지만 역부족이었고 고모님 내외의 속앓이와 애끓는 설득도 소용이 없었다. 사촌동생에 대한 마음의 짐이 아니더라도 고학력의 한국 사회에서 고등학교도(?) 못 나온 것에 대한 사회적 열등감은 누가 굳이 끄집어 내지 않더라고 한 청춘의 창창한 앞길에 오점이 되기에는 충분한 것이리라. 할 수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하지만 내가 무슨 입시 강사도 아니고 한 때, 공부 좀 하고 과외 경험도 있다지만 근 7~8년 전의 기억인 것이다. 이런 저런 계산적인 생각도 들었다. 이제 겨우 짬을 내서 군대 이후 자신을 위한 준비를 해나갈 시기인데 검정고시 준비에 소요되는 2~3달을 봉사하는 것이 낭만적인 허세는 아닐까하는 생각 말이다. 속으론 걱정을 몇 번 했지만 결정을 내렸다. 비록 나의 일은 아니었지만 ‘현서에게 검정고시’ 가 가지는 무게감이란 것을 생각하니 나의 것과 저울질 할 대상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현서는 전에 검정고시를 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준비 없이 봤는데 3과목은 합격해서 나머지 5과목만 붙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3달 전부터 공부에 손을 댔는데 현서도 나도 검정고시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시피 했다. 그냥 고등학교 때 공부하던 경험과 짐작으로 하나 씩 시도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영어 단어를 들이 밀어 보았고 연등시간 EBS강의를 보라고 했고 도움 받을 만한 인터넷 카페를 찾아보았다. 판단 착오였다. 바쁜 일과와 훈련 속에서 시간도 턱없이 모자랐고, 피곤한 몸으로 매일 연등하는 것, 여러 과목의 전 과정이라는 방대한 분량을 소화한다는 것은 상상 밖의 곤혹스러움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현서는 중학교 1학년 이후로 공부에 손을 대지 않아 기초가 전무한 상태였다. 책을 읽어도 방송을 보아도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 안 되는 것이 수두룩했다. 나에겐 일찍이 이런 과외 경험도 없었다. 이렇게 단기간 많은 분량을 정확히 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대개 과외 받는 학생의 수준이 안 되는 경우, 공부하는 습관과 흥미를 붙여주면서 수준에 맞게 적당히 진도를 나가고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리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3주 가까이 이렇게 헤매면서 현서에 맞게 수준과 방식을 맞춰 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커다란 장애물을 만나고 말았다. 구제역 때문에 현서가 파견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서도 공부하라고 격려해 주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고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휴가도 겹치면서 또 다시 한 달을 허무하게 흘려보내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더도 덜도 아닌 딱 한 달. 그런데 정말 고맙게도 부대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다. 이기적인 생각으로는 기왕 검정고시 붙으라고 했으면 조금만 일찍 더 지원 해주지 하는 원망도 들었지만 군대는 고시원이 아니었고 우리들은 백수가 아니었다. 감사하게도 병영도서관이라는 독립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연등시간까지 공부 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전부 우리의 몫이었다. 두어 달 쯤 전에 현서처럼 검정고시에 응시하려는 전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때는 인사만 하고 헤어졌고 그만 두었다는 말을 들어서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다시 하기로 하여 함께 하게 되었다. 수준이 어떤지 진단을 해봤는데 현서보다 더 많이 뒤쳐져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8과목 중에서 반만 붙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답할 때마다 입술에 힘을 주고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했으며 열심히 달려드는 모습이 뭐가 예사롭지 않은 친구였다. 이때부터 현서, 정현 그리고 나는 한 배에 몸을 싣고 미지의 신대륙 정복에 나섰다. 신대륙 탐험 정도면 좋으련만 많은 것을 열외 시켜 주고 반드시 합격하겠노라 선언하고 철판을 깐 상태에서 ‘안되도 되게 하라’는 말 이외에 타협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많은 것들과 싸워야 했다. 두 친구는 그동안 공부라는 것과 너무도 거리가 멀었던지, 책을 잡고 있는 체력도 금방 바닥이 나고 처음에는 1시간을 공부하면 1시간을 자야했으며, 단원마다 기본 개념 설명에만 반나절씩 흘러가곤 했다. 이해가 필요한 것도 생긴 모양대로 따라 그리기 하듯 외워야만 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설마 이것도? 저것도? 하면서 개념 설명을 한, 두 단계 거슬러 올라갔다. 스스로 흥분을 자제시킬 때가 많았다. 공부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가르치는 사람의 문제지. 어차피 바닥부터 시작할 줄 몰랐던 것도 아니고 배우는 입장에서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었다. 처음 듣는 것에 대해 100% 머리에 넣고 이해하라는 것도 나만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한계라는 것이 느껴질 때도 없지 않았다. 정현이와 현서의 과정과 진도가 달라서 두 탕을 뛰는 기분이었고 나도 대강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내 능력을 넘어선 문제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것을 짜냈고 군대가 나에게 심어 준 인내심이라는 것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게다가 가장 큰 고생을 하고 있는 두 전우의 마음을 져버리는 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시험 열흘을 앞두고는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다. 잘되고자 하는 것인데 두 친구를 너무 괴롭게 만들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험이 다가올수록 나를 부끄럽게 하고 힘을 준 것은 바로 현서와 정현이었다. 오래 앉아 있는 것도 곤욕일 것이고 제대로 된 수업도 받아보지 못한 친구들이 끝까지 책을 잡고 노력하는 모습은 적당히 하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 그 무엇보다 큰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성과가 나기 시작하고 성적이 오르면서 반신반의 했던 나의 마음은 점점 더 확신으로 변하고 있었다. 직접 시도하는 입장이었지만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두 친구는 해냈고 생각보다도 더 좋은 성적으로 합격이라는 기쁨을 맞이했다. 두 전우와 함께 검정고시를 준비했던 한 달이라는 시간은 앞으로도 정말 소중하게 남을 것 같다. 물론 두 전우가 느꼈을 수많은 어려움과 이를 극복함으로써 생긴 성취감을 내가 충분히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로를 믿으면서 걸어왔던 시간과 승리를 얻었다는 것에 대한 기억은 어떤 일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한 번쯤 떠올리게 될 것이다. 성공은 특별한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차라리 누구나 특별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끝으로 이러한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 준 군대라는 공간에 감사하고 너무나 많은 배려와 관심을 아끼지 않은 대대장님을 비롯한 간부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격려하면서 지켜봐 준 중대 많은 전우들한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고마워요, 우리 국군 페이지 만족도 평가
담당부서 :
정책홍보담당관
전화번호 :
02-748-5525
대표전화 :
1577-9090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셨습니까?

의견쓰기